뿌리깊은 플러츠-립 논쟁: 마오가 플러츠면 연아도 립이다(?)
솔직히 러츠 다운그레이드 문제는, 회전수 인정된 다른 선수들 사례를 보면 속쓰리긴 하지만, 그래도 좀 불안했고 회전수가 (다운그레이드감은 아니었다고 해도) 부족했다고는 하니 그래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가 줄 수도 있다. 허나, 플립의 롱엣지 판정은 상황이 다르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 연아가 어쩔 수 없는 대결구도를 형성하면서, 연아의 플립이 잘못된 엣지로 도약하는 점프(일명 '립')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날조가 일본팬들(특히 마오팬 진영)에 의해 정말 끈질기게 제기됐고, 이번 판정은 그야말로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라는 일본 속담마냥 이러한 날조에 손을 들어준 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점프도약시의 롱엣지 판정이 적용되는 점프로는 아웃엣지로 도약해야 하는 러츠(Lutz)점프와 중립에 가까운 얕은 인엣지로 도약해야 하는 플립(Flip)점프가 있다. 허나, 사실 실제 선수들 중에서는 이러한 규칙대로 도약하지 못하고 러츠를 인엣지로, 혹은 플립을 아웃엣지로 도약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잘못된 엣지 사용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인엣지로 도약하는 러츠점프를 플러츠(Flutz), 아웃엣지로 도약하는 플립점프를 립(Lip)이라고 한다. 실제로 아사다 마오를 비롯해 미국이 밀고 있는 나가스 미라이, 레이첼 플랫 등은 플러츠를 뛰고, 토리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라카와 시즈카는 립을 뛰는 등, 탑랭크 선수들 가운데서도 엣지사용의 구분은 쉽지 않은 문제였고, 연아는 그 쉽지않은 구분을 정확하게 해 내는 정말 그 흔치않은 선수였다. 작년 시즌 시작 전의 인터뷰에서 당시 세계 챔피언이던 일본의 안도 미키가 "제대로 뛰는 사람은 김연아밖에 없어요"라고 할 정도로.

연아는 러츠, 마오는 플러츠!
그러던 중 세계빙상연맹(이하 ISU)는 작년시즌부터 롱엣지 사용을 엄격하게 적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즉 플러츠나 립을 뛰는 경우 프로토콜에 e마크를 붙이고 감점을 하겠다는. 덕분에 마오는 저번시즌 내내 러츠점프에 e마크를 붙이고 다녔고 (그런데 그럼에도 가산점 준 심판도 있단다 =.=), 립을 뛰던 미키는 그 점프 엣지를 교정하느라 시즌 하나를 완전히 날려먹었다.
허나, 위에도 썼듯이 일본쪽에서는 얕은 인엣지인 연아의 플립을 아웃엣지인 립이라며 우기고(!), 날조영상 및 사진을 유튜브 및 각종 해외 피겨 커뮤니티에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는 그야말로 가상한 노력을 보였다. (사실, 이런 날조영상 때문에, 최근 SBS가 스트리밍 저작권을 이유로 유튜브의 연아 영상을 삭제하기 시작하자, 피겨팬 진영에서는 이런 날조영상만 남으면 어떡하냐고 걱정들을 많이 했다는...) 심지어 어떤 해외 커뮤니티 운영자는 연아 립 관련 글로 도배하는 모 운영자를 추방하기까지 할 정도. 허나, 다음 동영상에서 명확하게 잘 설명하고 있듯이, 연아의 플립은 제대로인 얕은 인엣지.

야구딘, 연아는 플립. 미키(교정전), 아라카와는 립
허나, 대회가 거듭되면서 이 롱엣지 규정도 느슨해진 것이 사실. SA에서는 레이첼 플랫이 !판정(e보다 덜한 플러츠 수준이라는..)을 받았을 뿐 대부분 엣지판정은 빠져나갔고, 심지어 SC에서는 너무나 확연한 플러츠인 일본의 스구리 후미에가 러츠 인정에 이어 두둑한 가산점을 챙기기까지 했다. 게다가 최근 방송된 영상에서 마오가 더욱더 교묘해진 플러츠를 구사하고 그 코치인 타라소바 여사가 "완벽한 러츠"라고 극찬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롱엣지판정은 물건너갔구나라며 아쉬워하던 한국팬들의 뒤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마오는 러츠고 연아는 립이라고? 이러다가 정말 마오는 플러츠를 가지고 러츠판정 받고 연아는 립판정 받는 사태가 오면 이 억울함은 어딜가서 호소를 해야하나. 덕분에 피겨커뮤니티에서는 "그럼 도대체 플립은 어떻게 뛰어야 한단 말이예요?"라며 패닉.
밴쿠버를 향한, 심판들의 장난질은 이미 시작되었다
어쩌다가 테크니컬 심판이 경험이 없어서 실수한 거 아니냐고? 어차피 1등 했으니 다음번에 판정 잘 받으면 된다고? 그런데 그렇게 쿨하게 넘기기에는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게 또 문제다. SA때 칼같이 점프 회전수 부족을 잡으면서 연아가 압도적 우승을 하고, 미국의 조니 위어랑 에반 라이사첵이 몽땅 다운그레이드 판정 받으면서 안방 우승을 일본의 코즈카 타카히코한테 내줬을때만 해도, 나름 칼같이 판정 한다고 많이들 흡족해했던 게 사실이다 (비록 엣지판정은 좀 서운했지만). 그러나 1주일 후에 열렸던 스케이트 캐나다(이하 SC)는 그야말로 이런 기대를 깡그리 무너뜨리고, 아울러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심판농간에 대한 우려를 한없이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우선 의혹의 발단은 여자싱글 우승자인 조애니 로셰트(캐나다)에 대한 거의 연아 수준의 후한 점수퍼주기와 스구리 후미에(일본)의 플러츠에 주어진 가산점이었다. 밴쿠버 대비 바람몰이 아니냐, 홈그라운드 이점 너무한거 아니냐라는 비난이 한동안 쏟아졌으나, 이어진 남자싱글 결과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으니, 프리프로그램에서 나름 여러번의 점프실수가 있었던 패트릭 챈이, 아무리 홈이라도 그렇지, TES보다 무려 16점이나 높은 PCS를 챙기면서 우승을 했던 것. 모 피겨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정도 수준으로 PCS가 TES보다 높은 경우는 세계선수권/유럽선수권 입상권 수준의, 항상 최고수준의 PCS를 받는 탑랭크의 선수가 어쩌다 점프를 말아먹었을 경우에나 가능한 결과라고. 심지어 전미선수권을 2연패 중인 에반 라이사첵보다 7점이나 높고,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본인과 대략 비슷한 PCS를 받았던 러시아 챔피언 세르게이 보로노프보다 14점이나 높은 PCS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얘를 우승시키기 위해 심판들이 합작한 결과임을 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판정의 최대 수혜자인 패트릭 챈 자신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실수한 점프를 다른 선수는 성공했다며 결과에 관해 "공정하지 않다"고 고개를 잘래잘래 흔든 마당에... 덕분에 홈에서 까다로운 판정 때문에 3위로 미끄러졌던 라이사첵은 캐나다에서는 역으로 홈텃세 때문에 3위를 하는 바람에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은 물건너갔다는. 미국연맹은 지금쯤 얼마나 자기 발등을 찧고 있을꼬....
허나, 그러한 석연치않은 심판 판정이 CoC에서는 더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롱엣지 판정이라는 황당한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으니, 이제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자주 회자되는 자조섞인 푸념 중에 "연아의 최대 약점은 국적"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연아의 정직한 기술이면 극복할 수 있다고, 연아를 믿고 그저 부상 없기만을 바라자고, 부상없이 클린 퍼포먼스를 하면 분명 이길 수 있다고 믿으면서 모두들 희망을 갖고 지켜봐 왔건만, 심판들의 농간 앞에서는 이런 희망마저도 부질없는 게 될 수도 있단 말인가? 이번 CoC에서의 판정이 너무나 무섭고, 한편으로 허탈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옆에서 보는 우리가 이런데, 당사자인 연아와 오서 코치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연아는 "정말 롱엣지가 나왔어요?"라고 재차 물었대고, 오서샘도 "정말 채점표에 e가 표시됐다는 말이냐"고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부디 연아가 이 판정에 맘 상하거나 부담갖지 않고, 평소 하던대로 프리에서 잘해주기만을 바랄 뿐.
Again Salt Lake를 원하는가?
위에 올해 세계선수권에서의 판정문제에 관해서도 언급했지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피겨팬들의 판정 트라우마는 바로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이다. (쇼트트랙 판정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알고계실테니 뭐 궂이 언급은 안하겠다 =.=) 페어스케이팅의 경우 애초에 러시아팀이 우승했으나, 미국과 캐나다의 지속적인 이의제기+프랑스 심판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러시아팀과 캐나다팀에게 공동 금메달을 수여하는 초유의 사태로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알고보니 그 문제의 프랑스 심판이 캐나다쪽에 매수를 당했다나.... 그뿐 아니라 여자싱글의 경우 미국의 미쉘 콴이 실수를 하면서 러시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우승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역시나 홈그라운드의 농간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사라 휴즈가 금메달을 채가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나름 스포츠계에서 한 세력 한다는 러시아조차 피해가지 못했던 심판의 농간질이었기에, 많은 피겨팬들은 밴쿠버에서 제 2의 솔트레이크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SC와 CoC에서의 판정문제는 이러한 팬들의 걱정이 전혀 기우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강력한 경제력과 미국의 정치력, 게다가 ISU회장의 조국인 이탈리아 등의 틈새에서, 확실히 연아의 국적은 전혀 도움이 못 된다. 하지만, 도와주지는 못해도 깎아먹지는 말아야 할 텐데, 최근 우리나라 연맹이나 언론의 행태를 보면 과연 깎아먹지는 않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연아의 이번 판정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단순 사실에만 치중한 보도들은 자칫 연아의 점프 자체가 문제인 것 같은, 따라서 그 점수가 타당한 것 같은 잘못된 인식을 일반 대중들에게 심어 줄 우려도 많다. 그동안 오죽 언론들이 트리플 악셀 타령을 해댔으면 아직도 마오가 최고고 연아는 기술적으로 못따라간다는 인식이 남아있다고까지 하니 말이다. (많은 언론이 설레발을 치고 있듯이) 연아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지가 궁금하면, 단순히 현재의 1등을, 이번에 200점이 넘을 것인가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올림픽까지 가는 연아의 길에 있어서 현재의 상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입각해 보도를 해야하는 게 아닐까. 메달색깔에 연연하지 말자는 그런 이상적인 얘기는 안 먹혀들어가는 거 안다. 그러면, 적어도 그렇게들 좋아하시는 메달 색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보도를 해 달라는 얘기다.
덧. 열받아서 글 쓰고 있던 동안에 오서샘이 정식으로 항의 제기하겠다고 했댄다. 정말 늠늠 든든한 오서샘 ^^ (역시나 연합뉴스 기사)
덧2. 아울러, 글 올리기 전에 감수 봐 주신 피겨스케이팅 갤러들께도 감사를.. (꾸벅)